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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모아이 상
내용 수치
비용 50
유지비 1
요구 기술 농업
요구 건물 -
생산 문화 +2
신앙 +1
추가기능 바다 타일에 생산력 +1
기타 천문학 연구시 쇠퇴함
신학 연구 시 신앙/관광 +2
기념비를 대체하는 폴리네시아의 고유건물(UB)

전략[]

신앙 +1도 좋지만 바다 타일에 생산력 +1도 좋다. 등대만 건설할 경우 식량 +2, 생산력 +1이 되니 시민 배치하기에는 아까운 편, 거신상을 짓던가 바다의 신 교리를 뚫어서 젖과 꿀이 흐르게 만들자. 신학 연구시 신앙과 관광을 2 제공한다. 그런데 기념비를 대체해서 천문학연구시 쇠퇴한다.

2.5패치에서의 변경점[]

  • 천문학 연구시 쇠퇴함
  • 신앙 및 관광을 제공하는 것이 고고학에서 신학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측됨. 추가바람

시빌로피디아[]

이스터 섬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석상. 아주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있으며, 오직 이스터 섬에만 있는 석상들이다. 서기 1500년 경, 외부에서 이스터 섬을 방문한 7명의 모험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7개의 모아이 석상(1960년, 고고학자 윌리엄 뮬로이(William Mulloy) 박사 팀에 의해 복원되었다.)을 제외하곤,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석상은 단 한개도 없다. 이스터 섬에는 나무는 물론 로프로 쓸 만한 목재도 없기 때문에 운반방법이 논란이 되었었다. 외계인 떡밥이 한동안 나도는가 싶더니, 석상이 만들어질 무렵의 지층에서 야자수 화분(花粉)이 발견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현재는 통나무를 굴림대로 쓰면서, 로프로 서 있는 채로 모아이를 끌고 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그럴듯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석상의 모습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장이족과 단이족 전설이 있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하다. 외계인 떡밥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외계인의 모습이라고 하고 초고대문명설을 믿는 사람들은 초고대문명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정작 고고학자들은 저게 신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매우 특이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사실 폴리네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석상들과 디자인 면에서 연결성이 있다. 이스터 섬이 폴리네시아 문화권에 속한다는 증거.[NEWLINE][NEWLINE]본래 이스터섬은 나무가 우거진 풍요로운 섬이었는데, 그 섬에서 일단의 부족들이 종교적, 주술적 의미로 이 모아이 상을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처음에는 작게 만들어졌지만, 점점 더 커다란 모아이가 만들어졌다. 큰 모아이를 만드는 것으로, 섬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으로 보자면 모아이는 이렇게 큰 모아이를 만든 것이 자랑 같은 용도로 쓰였던 것이다. 마치 현대 국가들이 거대한 랜드마크를 만들거나, 남한과 북한이 더 높은 깃발대를 만들면서 경쟁했던 것처럼. 물론 모아이만 만드느라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려면 식량을 생산할 밭을 만들어야 했고, 밭을 만들려면 나무를 베어내고 개간을 해야 했다. 또 해산물을 얻으려면 카누를 만들여야 했는데 카누를 만들려면 또 나무를 베어내야 했다. 하지만 아무튼 실용적인 목적이 없는 모아이 만들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나무가 쓰였던 것은 확실하다. 채석장에서 만드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이 석상들을 해안선까지 옮기려면 대량의 나무가 필요했다. 섬에서 종교적 단결을 위해서 모아이상을 양산하는 과정에서 섬의 나무는 모두 베어졌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는 순간까지 섬의 중심에서는 모아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섬에서 나무가 모두 사라지자 카누를 만들 수도 없었다. 카누도 없으니 이스터 섬은 배 한 척 없는, 문자 그대로 '섬'이 되어버렸고 당연히 수상 자원을 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중요한 자원인 나무가 없어지자 섬의 생활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매우 짧은 기간동안은 위태로운 평화기가 지속된듯 보이나,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믿어온 모아이를 만드는 행위가 사실은 섬의 자원을 무의미하게 소모시키는 행위였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큰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모아이의 눈이 파괴되고 모아이를 쓰러뜨리는 행위가 벌어졌다. 대부분의 모아이는 이 때 쓰러지고 파괴되었는데, 지금 섬에 세워져 있는 모아이는 대부분 다시 세운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스터섬에 인간 상륙 -> 섬의 자원을 이용하며 인구증가 -> 인구 포화상태,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 -> 남은 자원을 사이에 둔 분쟁이 커짐 -> 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힘을 과시할 필요성이 증가 -> 모아이가 더욱 대형화 됨. 그로 인해 자원의 고갈 속도 가속화 -> 자원이 The End, 정치체제 붕괴, 만인대 만인의 투쟁, 인구 20분의 1 수준으로 격감...지구를 하나의 섬으로 봤을 때 이런 일이 전 지구적으로 생긴다면... 석유가 고갈 되었을 때 현실화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한 나무가 사라지자 섬 전체가 사막화되기 시작하여 들여왔던 가축도 닭만 남기고 다 사라졌으며, 농사마저도 짓기 힘들게되었다. 그래서 돌뿌리 농법이라는 대체수단을 쓰기시작하는데, 석상을 만들다가 나온 돌멩이나 바위를 깨서 만든 돌멩이를 그나마 상태가 나은 땅위에 올려놓고 그늘을 만들어 거기에서 토란정도 되는 뿌리식물을 키운다음 어느정도 자라면 그 돌멩이들이 뿌리식물을 지탱해서 척박한 땅 위에 서있게해주는 농법이다. 하나하나 식물에 맞춰서 돌멩이를 움직여줘야 했으므로 엄청난 노가다가 필요했던 농법... 하지만 이 농법이 시행되는 동안에도 석상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섬의 주민들은 전쟁과 식량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으로 대다수가 사망했다. 식인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모아이 숭배와 신앙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 대체물로 새의 신 마케마케를 믿게 되었다. 이 지옥같은 섬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나는 새 밖에 없었고,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새를 동경하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다. 또,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섬의 문명 수준은 선조들보다 훨씬 못한, 그야말로 미개한 수준으로 떨어져버렸다. 유럽인 탐험가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스터 섬의 문명은 폴리네시아를 기준으로 해도 가장 초라하고 가난했다고 한다. 태평양 탐험을 하다가 이 섬을 방문한 영국의 쿡 선장은, 그나마 남은 오래된 나무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배를 보고 태평양의 모든 섬에서 가장 초라한 카누라고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식민지배를 당했을 때가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다고...밑이 둥근 구조나, 원주민으로부터 전해져온 '모아이가 걷는다' 라는 이야기를 생각해보았을때, 석상이 나무를 이용해 눕혀져 운반되지 않고 세워진 상태에서 좌우로 뒤틀며 밀어 운반하였으리란 추측도 있다. 가로세로 모두 20km도 안되는 작은 섬이었기에 자원의 고갈은 모아이 제작과 관련 없이 예정되어있었고 나무가 사라져 배를 만들어 다른곳으로 갈 수도 없게 된 부족끼리 식인이 벌어졌다는 설이다. 여러모로 지금의 지구와 사람, 그리고 현대문명에 대한 우화같은 이야기다. 사실이라는 점이 무서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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